[한국 현대영미드라마 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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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원형무대의 <유리동물원> 추천합니다.
손동호  2008-06-07 11:31:35, 조회 : 2,391

연극을 보고나서 박수 치는 일을 잊을 때가 있다. 배우들의 연기가 어설퍼서 경멸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오히려 공연이 너무 좋아서 내가 본 것이 연극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때 그런 현상이 발생한다. 연출자의 공연 컨셉이 작품과 들어맞아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아니 더 환하게 드러낼 때,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가 연출자의 의도를 한치 오차 없는 연기로써 실현해줄 때, 그래서 작가가 의도한 미와 철학이 무대라는 공간에서 유감 없이 드러날 때 관객은 그것을 아름다운 예술로 파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사생활의 영역을 넘어 보편적 진리로 모두에게 느껴지고 감동의 순간을 제공한다.



극단 원형무대의 2008년 <유리동물원>은 내가 무례하게도 공연 후 인사하는 배우들에게 박수를 치지 못하게 만든 또 하나의 작품이다. 나는 지금까지 <유리동물원> 공연을 세 번 정도 본 것으로 기억한다. 이 번이 네번째인 셈이다. 그런데 내가 판단하건대 작가의 의도를 가장 충실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드러낸 적은 극단 원형무대의 홍인표 연출의 공연이 처음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솔직히 말해 그 동안  <유리 동물원>을 강의하면서 나 자신도 이 작품이 기억극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가르치지 못하였다. 그랬으니 기억극으로서의 이 작품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도 못했다. 톰의 대사를 통해 그리고 작품의 구조상 이 작품의 톰의 회상을 다룬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절실하게 와닿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홍인표 연출은 내 앞에서 보란듯이 이 작품의 밑바닥을 훑어서 내게 그 보석같은 아름다움을 가르쳐주었다. 기억 속의 세계가 얼마나 아련한지 그리고 현재와 얼마나 동떨어진 것인지, 공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어떻게 무리없이 관객에게 전달될 수 있는지 홍인표씨는 훌륭하게 드러내 주었다. 그의 강의는 내개 읽은 많은 양의 비평서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었다.



아만다와 로라는 과거에 갇혀 현실을 회피하고 꿈꾸는 유리동물들처럼 살아간다. 아만다는 젊은 신사방문객들과 어울렸던 과거를 그리워하며 딸에게도 그와 유사한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한쪽 다리를 저는 로라는 지나칠 정도로 수줍음이 심해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타자학교에도 나가지 않고 거리를 배회하다가 집에 돌아오곤 한다. 톰의 신발가게에서 함께 일하는 청년 짐 오코너가 저녁식사에 초대를 받아 왔을 때 아만다는 과거의 파티복을 입고 등장하여 로라보다도 더 흥분한 모습으로 대접한다. 저녁 식사 후 짐은 로라와 춤을 추다가 우발적으로 로라가 수집한 유리동물들 중에서 일각수의 뿔을 부러뜨리게 된다. 환상 속에 갇혀 살지 말라는 짐의 가르침은 로라에게 세상을 새로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를 준다. 하지만 짐은 이미 약혼자가 있는 사람이었다. 아만다는 실망하여 톰에게 화를 내고 톰은 집을 나가버린다.



연기의 압권은 역시 로라 역의 서경화씨였다. 로라는 장애인이라면 장애인이다. 외모의 문제 때문에 대인기피증에 시달리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노처녀이다. 그런데 외모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면의 장애이다.  그 내면의 장애를 서경화씨는 너무도 훌륭하게 보여주었다. 얼굴표정, 손의 떨림, 절뚝거리는 다리는 육신의 장애가 아니라 내면적 장애의 발현이었다. 서경화씨의 연기는 영혼의 떨림이 순간순간 온몸의 세포마다 전달되어 나타나는 현미경적 섬세함과 정확함으로 관객을 몸서리치게 한다. 얼굴 근육의 경련, 입술의 떨림, 치아, 그리고 머리 스타일, 걸음걸이, 뒤틀린듯한 몸체, 말투,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연기는 연약한 영혼이 겪고 있는 수줍음, 두려움, 어색함, 절망 등을 절절하게 표현하였다.  



극간 원형무대의 <유리동물원>은 테네씨 윌리암스가 극작가이자 시인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만든다. 이번 공연은 연극이면서 한편의 시였고, 지극히 아름다운 병신춤이었고 마임극이었으며 모든 관객의 영혼의 심연을 건드리는 굿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반투명한 플라스틱 커튼에 가려진 아만다와 로라의 세계를 기억한다. 이 공연을 보고 많은 분이 영혼을 비추는 마술거울을 들여다본 본 것처럼 충격을 받았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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