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영미드라마 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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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런의 죽음--살빼기가 뭐길래
김정호  2003-08-08 23:54:14, 조회 : 1,798

우리 나이로 쉰 살 이쪽 저쪽인 경우 미국 팝 가수 중 스탠다드 팝으로 70년대를 투명하게 수놓았던 남매 듀엣 카펜터즈(The Carpenters)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오빠 Richard Carpenter와 Karen Carpenter의 듀엣이지만 특히 리드 싱어인 여동생 캐런이 주로 멜로디를 맡았는데 그녀의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맑고 애조띤 목소리는 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 그들이 돌연 캐런의 죽음으로 해체된 지 20년이 넘는다. 1982년 일이다.

캐런이 출생한 년도가 1950년이니 우리 나이로 서른 세살에 사망한 셈인데 그들은 지금처럼 기본 소양은 접어 둔 채 갖은 컴퓨터 기기 도움으로 간신히 노래 한 곡 취입해 소속사의 선전에 힘 입어 잠시 활동하다가 사라지는 급조된 가수나, 또 어리디 어린 애들 취향이어서 그 애들 맘 변하면 그만 둬야 하는 식의 반짝 가수도 아니었다. 서른을 갓 넘긴 나이는 엄정화나 김혜수 나이 정도라고 할 수 있으니 그녀가 얼마나 이쁠 나이에, 그리고 젊은 나이에 죽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죽음의 직접적 원인이 바로 무리한 살빼기라는 데 그저 그러려니 할 수 없는 시사하는 점이 많다.

캘리포니아 다우니에서 태어난 캐런은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 노래잘하는 아이였다. 그러나 가족들은 피아니스트였던 오빠 리차드에 더 기대를 걸었으며 그는 밴드를 조직해 클래식부터 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주를 하며 앨범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가 카운티 축제에서 연주할 때 캐런은 그의 피아노 악보를 넘겨주는 아이였을 뿐이다. 그러다 어쩌다 캐런이 노래를 하면 사람들이 놀라워 하고 감동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 캐런은 너무 어렸었다.

중학교에 들어간 캐런은 밴드부에서 작은북을 친다. 그녀의 꿈은 후에 드럼연주자가 되고 싶은 것이었으며, 오빠 역시 그런 그녀를 격려했으며 둘이서 팀을 만들려는 계획도 세우곤 했다. 물론 부모들은 여성 드러머가 어디 있느냐며 놀리기도 하고 만류하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는 바로 자신이 최초의 여성 드러머가 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곤 했다. 이 시절 캐런은 먹성 좋은 십대 소녀였다. 그리고 리차드와 캐런은 피아노와 드럼을 연주하며 장래 유명한 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던 행복한 시절이었다.

1966년 캐런은 정말이지 우연히 작곡가의 눈에 띤다. 오빠 리차드의 피아노 음반 녹음 중 보컬이 있으면 좋겠다는 작곡가의 제안에 리차드는 즉석에서 캐런에게 노래를 부르게 하며, 이를 듣던 음반 제작업자는 오빠 대신 동생의 계약서를 들고 그녀의 부모를 찾는다. 아들의 음악적 소질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던 부모들은 어이 없어 하지만 결국 미성년자인 캐런을 대신해 계약서에 서명한다. 그러나 영세 업자였던 그 음반 제작자는 자금난 때문에 도산하고 이후 이들 자매는 직접 녹음된 릴을 방송사 등에 보내며 밤 무대나 축제 무대 초청 가수로 활동한다.

1969년 카펜터즈는 A&B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으며 데뷔앨범을 내놓는다. 그리고 놀랍게도 사람들은 그녀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넋을 놓았으며 그녀의 음반은 날개 돋힌 듯 팔린다. 이후 수 많은 히트곡들을 내 놓았으며, 그들의 히트곡으로는 "Ticket to Ride," "We've Only Just Begun," "Another Song," "I'll Never Fall in Love Again," "Yesterday once More," "Sing," "This Masquerade," "Jambalaya," "Top of the World" "Don't Cry for Me Argentina" 등이 있다.

세번의 그래미상 획득, 수 없이 등재되었던 빌보드 차트 1위, 닉슨 정부 시절 백악관 공연, 수 많은 외국 연주 여행 등 그들은 70년대 독보적인 대중 가수였다. 우리 나라에서도 그녀의 음악을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지금은 일본에 가 있는 이성애라는 가수는 그녀의 노래를 번안해 불러 유명가수가 되었다. 그러나 그 시절 그녀는 너무 어렸으며, 너무 일찍 대중들 앞에 섰었다. 어린 그녀는 화려한 스포트라잇 뒤에서 뒤틀려가며 무너지고 있었다. 바로 그녀가 접촉했던 많은 셀러브리트들의 몸매을 닮고 싶은 욕심이었다.

이상하게도 캐런은 자신이 살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음반사 사장 부인이 사 준 옷을 입기 위해 살을 빼야 했던 그녀는 상류 사회의 여성들이 날씬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물론 그녀는 그들 보다 못하면 못했지 더 하진 않았다. 그녀는 과도할 절도로 운동에 몰두했으며 살빼는 약을 복용하다가 오빠와 엄마에게 여러번 발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는 약을 복용했을 뿐만 아니라 음식까지고 극도로 멀리하게 된다. 그리고 공연 도중 쓰러지기도 한다

그녀는 부모에게 아름다운 집과 차를 사드리고 값 비싼 옷을 선물하는 효심 지극한 딸이었으면서 정작 자신은 식당에서 그 맛난 고기나 생선은 입도 대지 않고 장식용 웃기로 얹어 놓은 아스파라거스만 먹을 정도로 심한 음식 거부증을 보인다. 그리고 입원한다. 그 때 그녀의 몸무게가 겨우 55파운드(30킬로 그램 이하)였다니 얼마나 말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잠시 퇴원하기도 했으니 정신과 치료도 받아야 했고 회복할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거식증으로 인한 심장 마비였다. 그 때 그녀의 몸무게는 46파운드였다. 1982년이다.

미국인들 중에는 먹을 것 있는 대로 다 먹어, 그것도 정크 푸드로만 골라 먹어 칠면조 목보다 더 늘어진 배나 출렁거리는 허벅지를 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으며 심지어 911 차가 와서 내려 주어야 이층 아파트에서 내려올 수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극단적으로 살을 빼 자랑하고 다니는 애들도 눈에띤다. 특히 여중, 고생들이 그렇다. 그 애들은 그 마른 몸매를 자랑하기 위해 바지를 거의 골반에 걸치고 배를 보여주고 다니며, 시도 때도 없이 내려가는 바지를 추키느라 딴 정신이 없는 애들이다.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도 캐런 같은 경우처럼 심하지는 않더라도 극도로 살 혐오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소식이다. 나이 든 여성들도 그런 분들도 있는 걸로 안다. 살 찌고는 어찌 견뎌낼 재간이 없게 만드는 사회라서 그런 셈이다.

삼십년 전 내가 대학 다닐 때, 그 때도 여학생들은 살찐 것을 싫어 했다. 남학생들이 싫어했으니 그 여학생들도 싫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여학생들은 남이 볼 때는 우동 면발도 짜장발도 남기고 밥도 비벼 놓고 남겼지만 집에만 가면 큰 양푼에 찬 밥 담아서 고추장과 참기름 좍좍 뿌려 밥 비벼 먹었으며 배 부르면 동네 한 바퀴 돌다 아줌마들하고 이야기 하며 배 꺼쳤는데, 요즘은 그러지도 않는 듯 하다. 과자 부스러기 집어 먹거나 당근 토막낸 것이면 족하다는 식이다.

하기야 살 찌고는 무렴해서 살 수 없을 지경으로 몰아세우는 사회니 어린애들이 그 치욕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야 공부해야 되는 체력 때문에라도 별수 없이 밥 먹었다지만 대학에 들어오면 사정을 달라진다. 공부 열심히 할 일 없으니 체력 걱정 안해도 되고 맘 놓고 살 내리기 시작한다.

문제는 그 애들이 생각하는 쌀찜이 절대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캐런의 경우도 그렇지만 이런 경우 다분히 심리적 문제여서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데도 본인는 부득부득 그렇다고 우기거나 실제로 정말로 그렇다고 믿는 경우다.

사람의 몸이라는 것이 자기 조절 작용이 있어 안 먹다 보면 신체 구조나 세포가 적응하기 위해 변형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그 상태가 마치 정상적인 것처럼 편안해지고, 더욱 안 먹어도 되고, 또 변형되고...이런 식의 악순환이 이어지다가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이는 비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처음에 살 붙으면 그렇게 불편하다가도 조금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편안해지고 그러다가 다시 먹고 살 붙고 하는 식이다.

미국 여성들과 견주어 한국 여성들 살찐 것은 가소롭다. 그러니까 통통하지 절대 살찐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원래 태어나기를 그렇게 태어났으며 쪘다 한들 그 한계도 일정 부분 있다.

문제는 살쪘다고 우겨대는, 살쪘다고 믿게하는, 살쪘다고 죄의식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다. 이쁜 옷은 살찐 사람이 입으면 옷 태도 안나고 따라서 매상 안 오른다고 죄다 작게 만들어 살 빼내지 않고서는 끼워 보지도 못하게 하는 사회, 텔레비고 영화고 온통 깐질대처럼 마른 애들만 펄렁거리는 사회, 살 뺀 것을 무슨 대단한 성공 수기인 양 소설처럼 각색해 연재하는 잡지를 만들어 내는 사회, 바로 그런 사회가 잘 먹고 열심히 활동해야 할 애들을 병들게 하는 것이다. 살 가지고 호들갑이니 다른 정신인들 어디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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