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영미드라마 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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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대기 커피
김정호  2003-05-29 14:46:41, 조회 : 2,575

어렸을 때, 정말이지 말할 수도 없이 가난했을 때, 그 때는 아이들은 그저 어른들 말 잘들어야 밥 얻어 먹고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모든 것이 어른들, 특히 남자들 위주였던 시대여서 애들은 그저 어른들 눈치보고 맞을 짓 안하고 커가면 그만이었던 시대였다.

음식도 귀하기 짝이 없었고 일상적 먹을 것들이 마르고 모자란 시대여서 심지어 지금은 지천으로 깔린 계란도, 그래서 삶은 계란 같은 것은 냄새난다고 쳐다도 보지 않는 그것이, 그 때는 그저 집 안에서 오로지 가장 차지였고, 혹시 밥 상에서 짠 고등어 구이에 젓가락이라도 들이 밀면 여지없이 귀 싸대기감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애들은 어른들 술 심부름을 그렇게도 자주 해야 했다.

그 때는 술을 사러 동네에 있는 것도 아닌, 읍내에 위치한 술도가(주장)까지 나가야 했었다. 쌀 팔러 가듯 읍내로 술 받으러 갔던 것이다. 막걸리도 소주도 모두 커다란 통개에 담아 놓고 되나 납대기로 되어 팔았기 때문에 주전자들고 주장까지 걸어갔다 오면서 홀짝거리다가 술 취할 때도 있었던 시절이었다. 배고프니 술이라도 홀짝거려 허기를 메워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술 받아 나르면서 몰래 마시며 학교를 졸업하고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 갔던 시대였다.

이곳 시애틀에서 나는 납대기로 커피를 받아다 마신다. 스타벅스 본사가 이곳에 있으며, 시애틀 베스트 커피도 알아주는 커피 회사다. 스타벅스 매장에 들러보면 하루 종일 그렇게 복작거릴 수가 없다. 아침도 이곳에서 해결하고 점심 때도 다시 들러 커피마시고, 저녁에 다시 입맛 다시는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그런지 커피전문점 내부도 볼 만하다. 마치 흑염소 달여 약 봉지에 넣는 기계 같기도 하고 붕어즙 내리는 것 같기도 한 스테인리스 기계들이 카운터 뒷 편에 화려하게 설치되어 있으며, 커피 내리는 냄새가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다.

이곳 사람들 커피 주문하는 것을 보노라면 저절로 탄성이 나온다. 거의 한 문단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이 원하는 타입의 커피를 줏어 섬기는 데 이를 다 기억해서 그대로 만들어 내는 직원의 기억력 또한 감탄할만 하다. 며칠 전에는 "모카에 디 카페에 슈가리스에 넌팻에 그란데에, 어쩌구 저쩌구 기타 등등 ... " 끝도 없을 것처럼 이어지는 주문을 하는 미국 여자에게 하도 궁금해서 넌즈시 물어 보았다.

"미안하지만 뭐라고 말했는지 다시 한 번 해 줄래?"
"왜?"
"신기하고 재밌어서 그런다"
"응? 모카에 디 카페에 슈가리스에 넌팻에 그란데에, 어쩌구 저쩌구 기타 등등"
"느네 미국 사람들은 다 그렇게 까다롭게 커피를 주문하냐? 우리 한국에서는 그저 '커피'라고 하는데..."
"특히 시애틀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그나 저나 저 직원이 다 기억하냐?
"무슨?"

한국에서 인스턴트 자판기 커피에 인 박힌 사람들은 처음엔 원두커피의 맛을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어찌 배만 부르고 커피 맛이 안나'"라고 불평할 뿐이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점차 이곳의 순한, 그러면서 향이 은은한 원두 커피에 인 박히기 시작하면 거의 매일 마셔야 한다. 특히 나는 납대기에 받은 커피에 크림만 넣어 마시는데 보통 7,8개 정도 크림을 배합한다. 그런 나를 보고 어떤 미국놈은 "크림에 커피 조금?" 하며 웃기도 한다.

학교 학생회관에서 시애틀 베스트 커피는 리필 용기를 가져 가면 75전에 마실 수 있다. 내가 이용하는 리필 용기는 생맥주 500cc 쯤 담아낼 수 있는 커다란 용기여서 여기에 가득 담아 들고 다니면 거의 점심 전까지 홀짝거릴 수 있다. 리필 용기는 학교 학생회관 안내 센터에서 분실물 공고 기간이 지난 제품을 25전에 살 수 있으니 한번 사면 두고 두고 사용할 수 있고 엎질러지지 않으니 금상첨화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은 아파트에서 한 블럭만 걸어가면 툴리 커피 전문점이 있는데 이곳에서 커피를 받아다 마실 수 있다. 물론 이곳은 다소 비싸 1불 42전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곳은 아침에 간단한 빵 조각들을 서비스하기 때문에 주섬 주섬 먹다 보면 아침을 해결할 수 있어 별 차이는 없는 셈이다. 거기서 거기고, 윷판 말로 '도 나가나 개 나가나, 도 찐(진) 개 찐(진)'인 셈이다

아침에 3마일 정도 호숫가를 달려 땀 흘린 다음 돌아오는 길에 마시는 커피 맛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은근한 맛을 준다. 한국에서 했던 것처럼 술 마시기도 심드렁한 이곳에서 유일한 즐거움인 셈이다. 오늘도 나는 납대기로 커피를 받아 홀짝거리며 돌아오면서 어렸을 때 납대기로 술 받아 날랐던 기억을 떠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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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대기 커피  김정호  2003-05-29
14:46:41
     멋쟁이 김정호선생님  이해영  2003-06-10
13:41:26
       Re..각시 띠어 놓고 혼자 사니...  김정호  2003-06-10
14:3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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