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영미드라마 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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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나도 아내가...
김정호  2002-11-09 12:59:20, 조회 : 2,094

부모에게 자식은 과연 무엇일까.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아들에게 아빠로서 나는 어떤 부분까지 기대하고 돌보아야 하는 것일까. 그런 아들은 아빠인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며 의존하는 것일까. 부모의 자존심은 아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일까.

이곳에 와서 작은 아들하고 단 둘이 지낸지 벌써 석 달이 넘어가고 있다. 그동안 작은 마찰도 있었고 속 상할 때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흐뭇함과 대견함을 느낄 때가 많아 견뎌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 오랜만에 아들과 단 둘이 지내며, 다시 한국에 돌아가면 불가능할 생활들을 꾸려가며 난 아들과의 지금 이 생활을 무리없이 지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지냈던 것 같다. 하지만 요 며칠 난 사춘기의 아들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본다.

되짚어보면 한국에서 작은 아들과 단 둘이 미국생활을 하려고 결정했을 때 참으로 막하기만 했었던 것 같다. 한국 생활이란 게 워낙 그렇지만 사회활동과 아이 돌보기가 과연 무난하게 양립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문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만만치 않았으며, 자신도 없었던 것 같다. 논문도 써야 하며, 지도 교수와의 관계도 그 때는 전혀 오리무중이어서 자신의 나 자신의 코자 석자였으며, 건강 또한 그다지 자신할 수 없었고, 아침에 나 일어나기도 벅찬데 아이 깨우고 밥차려 먹여 학교보내고, 더욱이 문제는 매일 아이 숙제를 어느 정도까지는 돌보고 챙기고 심지어 풀어내야 하는 상황도 있을텐데 내 성정으로는 아무래도 쉽게 적응할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와서 막상 단 둘이 지내고보니 내 심정은 자연스럽게 이 모든 것들을 책임지고 돌보고 챙겨가는 쪽으로 기울었으며, 그 자질구레한 일들이 마치 오래전부터 해 왔던 것처럼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실제로 한국에서 가정주부가 하는 일을 온통 그대로 해내야 했으며, 그 외에도 사회 생활 및 학교 생활까지 모두 내 손을 거쳐가며 풀려가고 있었다. 그 일들은 이상하게도 힘들지 않았으며, 음식 만들기에도 일정 부분 재미나 창조의 기쁨이 끼여들기도 했었다. 아이가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다음에 만들 음식을 생각해내게 되었고, 축구 시합에서 골을 넣은 것을 보면 그 동안 라이드하느라 번잡했던 불편함도 쉽게 잊어버리곤 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뒤에는 아들녀석이 잘 적응하고 이곳 생활을 즐기는 것 같은 느낌과 확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확신은 모로지 아들로부터 연유된 것이었고 그 보답 또한 모두 아들의 것이었다. 아, 바로 이런 즐거움 때문에 부모들은 그런 수고스러움과 고단함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시 남자의 주부/엄마 노릇은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가장 힘든 것은 아들하고 단 둘이 살면서 아들놈하고 나 사이에 완충지역이 없다는 것이며, 중간 조언자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별 일도 다 겪지만 아들을 키우면서 속 썩히는 일이 어디 한 두 가지랴. 아들에 대한 실망감은 완화되거나 가벼워지지 않은 채 곧 바로 화살처럼 내게 와 꽂히며, 그 무게와 날카로움은 쉽게 가벼워지거나 무디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있으니 말이다.

난 항상 아이에게 미국생활을 즐기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평생 살 것도 아니고 일년 후면 돌아갈 것이니까, 그러니까 언제 다시 경험할지 모르는 생활이니까, 이곳에 있을 때 마음껏 겪어보고 즐기는 것이 이곳에 온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이다. 그러한 내 말 속에는 모든 일을 적극적으로 경험하고 실수하고 그리고 생각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으며, 특히 유난히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내 아들의 경우, 이곳에선 자신의 일에 신경쓰고 관심주는 사람이 없으니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의미로 말하곤 했다.

나는 내 아들이 한국에서 그다지 열심으로 영어 공부하지 않았던 것을 상기시켜주며, 그래서 지금 이곳에 와서 영어 때문에 후회되는 점이 있으며, 지금의 후회스러움을 다시 한국에 가서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곳에서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아들은 그런 내 심정을 그런대로 무난히 따라주며 적응해 나가는 것 같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러나 지난 목요일, 나는 아들에게 다시 한번(이번이 두번 째) 실망하고 거의 하루 종일 무력감에 빠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냈다. 바로 방과후 활동 때문이었다. 방과 후 활동으로 두 달간 지속된 테니스 과목이 종료되고 다음 종목으로 농구가 계획되어 있었으며, 난 아이에게 동의를 구한 후 건강증명서를 비롯한 여러가지 서류를 갖추어 지난 주 목요일에 제출했다. 카운슬러인 짐 매커슬랜드는 스포트 종목이 많지 않아 경쟁이 심할 것이고, 서류 심사 후 한 주 동안 try out을 실시한 다음 선발한다고 말했으며, 나는 아들에게 서류를 제출한 다음 주에 office에 가서 확인한 후 열심히 해보라고 말했다. 물론 통과하면 말할 것도 없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열심히 한 뒤 탈락하면 다른 활동으로 돌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적어도 노력해서 안되면 별 수 없으며, 스포츠 활동이야말로 친구들과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고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월요일부터 아들은 아무 활동도 하지 않은 채 수업이 끝난 후 일찍 집에 오기 시작했다. 월요일 오후 일찍 온 아들에게 난 다음 날 office 에 가서 직접 확인해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화요일 오후, 학교에서 돌아 와 보니, 아들은 여전히 버스를 타고 일찍 집에 와 있었다. 직접 확인해 보았냐는 내 질문에 office에 가서 확인했지만 농구부 리스트에 자기 이름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수요일에는 골프장에서 오후 늦게 돌아왔으며, 드라마스쿨 정기 공연이 오후 7시에 시작되기 때문에 미처 확인하지 못한 채 연극 공연을 보고 돌아 왔다.

목요일 오후 서둘러 학교에서 돌아 온 나는 직접 아들녀석 학교에 갔으며, 확인한 결과 뜻 밖에도 농구부 명단에 아들녀석 이름이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지난 화요일부터 이미 연습이 시작되었다는 말까지 들었다.

체육관에서 만난 농구 코치는 이미 이틀이 지나 선발할 수 없으며, 내년에 다시 응시하라고 내게 충고했으며, 시험 삼아 한번 테스트라도 해 보자는 내 얘기에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체육교사에게 부탁해 간신히 연습에 참가하게 만들었으며, 코치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번 반복해야 했다. 그러나 이미 어색함과 당황함을 느낀 아들 녀석은 전혀 열심히 뛰지 않았으며, 마치 억지로 끌려 온 말처럼 두리번거리고 실수를 연발했다.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은 그 모습을 두고 볼 수 없어 나는 한 시간 뒤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코치에게 전하고 뒤돌아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말할 수 없는 실망감과 무력감을 느꼈다. "도대체, 하기 싫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일까, 아니면 실제로 확인했는데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 그런 것일까, office 벽에 명단이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은 관심이 없고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에 확인하지 않고 그냥 일찍 집에 온 것일까..."

나는 언젠가 아들 녀석이 테니스를 그만 두고 싶은 듯한 표현을 하길래 "선수가 되려고 하는 것이라면 그만 두어도 좋다. 왜냐하면 지금 네 실력으로는 이기는 경우보다 지는 경우가 더 많을테니까. 그러나 중학교 스포츠 활동은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열심히 참가하고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너보다 더 어리고 못하는 미국애들은 저렇게 열심히 뛰고 노력하지 않느냐"로 말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내 아들은 노력하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날 나는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냥 저녁밥을 차려 주었으며, 다음 날 아침밥만 차려 주고 일찍 학교로 가 버렸다. 원래는 이번 금요일이 교사들 행사가 있는 날이고, 다음 주 월요일이 veterans day 여서 오리건 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었으나 도무지 신이 나지 않아 취소해 버리고 그냥 학교에 갔다. 이런 기분으로는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무의미할 것 같았으며, 또한 아들 녀석과 잠시 냉각기를 가져,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학교에서 난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네 인생이지 내 인생은 아니지 않느냐. 다시 한국에 가서 후회하고 싶으면 지금 이대로 지내거라." 아이에 대한 실망감은 날 무기력하게 만들었으며, 옛날 어른들 말씀대로 '서(혀)가 빠지게 고생해서 키운 자식' 정 떨어지는 소리가 나는 듯 했다. 그리고 이럴 때 중간에 완충역할을 담당할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한국에서 아들 문제로 속 상한 아내를 두고 난 적당히 괜찮다는 입장이었으며, 그러한 내 행위는 아빠라는, 아들과 엄마를 사이에 두고 한 걸음 떨어진 거리에 놓여있는 상황 때문에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다. 아들 교육문제는 일차적으로 엄마의 관심이고, 아빠는 문제가 심각할 때나 관여하는 그런 사고와 입장을 나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이에 아내라는 완충역할이 없어지고 나니 난 아들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감을 직접 실감할 수 있었으며, 일상적 노력에 대한 내 수고로움이 배반당했다는 느낌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날, 난 도서관에서, 휴게실에서, 그리고 버스 안에서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지냈다. 그러다 문득 나를 혼자 키우셨던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 올렸다. 완충역할 없이 직접 나와 마주쳤던 그 오랜 세월동안 그 분은 지금의 나와는 비교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실망과 분노를 느꼈을 것이다. 아, 이래서 부모 노릇은 쉬운 게 절대 아니며, 아이를 키워보면서 부모를 다시 떠 올리는 것인가.

오늘 캠퍼스엔 찬 바람이 불고 까마귀들이 무리지어 날고 있었으며, 그 울음 소리는 가을을 재촉하는 소리 같았다. 오늘은 포도주로는 안 되겠고 양주 한 잔 마시고 싶은 기분이었다. 아, 나도 이럴 때 아내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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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럴 땐 나도 아내가...  김정호  2002-11-09
12:59:20
     Re..이럴 땐 나도 아내가...  이희원  2002-11-13
10:07:44
       Re..김정호 교수님께 감사를....  김소임  2002-11-13
10:2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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