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영미드라마 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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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뭐길래
김정호  2003-08-24 02:58:41, 조회 : 1,911

근자에 한국에서 호주제 폐지 논쟁이 한창이라는 기사를 인터넷에서 읽었다. 여성계가 최대의 사업으로 추진중이며, 이에 유림측이 발끈하여 반대가 만만치 않다는 소식이다. 국회의원들을 믿는다지만 그들이야 태생적으로 눈치 보기 선수들이어서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며, 이 사람에게 다르고 저 사람에게 다르니 모르긴 몰라도 오래 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여기에 이름 논쟁이 가세하여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는 것이 지금의 호주제 논쟁인 것 같다. 몇년 전부터 부모의 성을 동시에 사용하는 여성들이 점차 늘고 있으며, 특히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성과 이름 합쳐 네자가 되지 않으면 진취적인 대열에 끼지 못한다는 자책감까지 지니고 있어 경쟁적으로 사용하는 경향까지 있을 정도다. 물론 지금은 별 문제 없겠지만 다음 세대에 가면 이름은 여섯자가 될 것이며, 그 다음엔 열자가 될지도 모른다. 우리 속설에 이름 길게 지어 장수하게 만들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아들 일화가 떠오르는 상황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의 호적제도가 다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혹자는 일제의 잔재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우리가 언제부터 이름 불러가며 살았는가라고 우리 역사까지 뒤집고 있지만, 어째튼 시대의 흐름이니 적정선에서 개정이 있으리라는 예상은 해본다.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도 이름 문제가 화제다. 물론 아버지 성을 따르냐 마냐의 근원적인 문제는 아니다. 미국 사람들 결혼하면 남편 성을 따라가는 것을 보면 우리보다 한참 원시적이며, 남성의존적이라는 인상을 받기도 하거니와 아직 외가의 이름을 같이 쓴다는 점은 시기상조라는 것이 전체적인 분위기다. 실제로 그런 논쟁은 아직 일어나고 있지 않다.

남북 전쟁이 한창일 때 헌법을 개정하면서(제 13차 개정)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도 다른 사람을 노예로 삼지 못한다"는 대목을 헌법에 포함시키느냐의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헌법에 포함시키지 않은 일이 있었다. 바로 가정에서의 남편의 우위권이 바로 이 문장에 의해 심대하게 훼손당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흑인들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당시 흑인들에게는 법률에 의해 구속력이 있는 결혼이 허용되지 않았다. 노예 중에는 가족을 이루고 살기도 했지만 노예주가 마음대로 그 가족을 해체할 수 있었다. 또한 주인은 여자 노예를 범하고 이득을 취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고 심지어 법률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으며 많은 혼혈들이 태어났고 그들 역시 노예로 부려먹을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남북 전쟁 후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을 때 많은 백인들이 가장 두려워 했던 것은 결혼에 미칠 사회적 충격이었다. 백인들은 가정 내에서의 아내의 복종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법률을 기초하는 데 대단히 신중했으며, 물건처럼 부려먹었고 사용했던 흑인들의 반응에도 민감해야 했다. 많은 흑인들은 이전의 가정에서 벗어나 새로운 파트너를 찾기 시작했으며 사회적 혼란을 염려한 연방 당국이 개입하여 법을 집행하고 벌금을 물릴 수 밖에 없었다.

식민시대부터 미국에서의 결혼은 국가가 통제하는 법률적, 시민적 계약이었다. 바로 프로테스탄트 전통 때문이었다. 캐톨릭이 결혼을 교회가 승인하는 성사 중의 하나로 간주하는데 비해 신교는 국가의 통제를 앞세웠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결혼은 두 사람의 약속 이상이어서 아내는 남편에게 자신의 재산과 위치와 이름까지를 포기하면서 복종하기를, 남편은 아내와 가족을 부양하기를 명령하는 사회적 약속이었다. 두 사람이 한 몸이 된다는 의미 속에는 여성의 존재를 지워버리려는 의도가 배어 있는 것이다.

물론 여성들의 저항은 지속되었으며 초기 여성주의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스톤(Lucy Stone)은 결혼 후에도 자신의 이름을 고집했던 여성이었다. 최근에야 결혼이 개인의 선택이자 자유권이라는 인식 하에 동성 결혼이 논란 중이며, 심지어 폴리개미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보수가 힘쓰고 있는 사회라는 점은 분명하다. 캐나다가 허용한 동성결혼이 이곳에선 여전히 불법이다. 이름붙이기도 그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셈이다.

미국인들은 중간 이름을 적절히 이용한다. 성과 달리 중간 이름은 여러가지 이유로 붙여지는데 주로 조상 중에 기릴만한 인물이 있는 경우 이를 채택한다. 물론 이 경우에도 이름이지 성(family name)은 취하지 않는다. 또 조상의 이름이 아니더라도 아이에게 특별히 붙여주고 싶은 경우 그 이름을 취하기도 한다. 따라서 중간 이름은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별짓는 중요한 이름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이름이 화제가 되는 것은 그야 말로 이름(first name) 짓기다. 이름도 유행을 타기 때문에 한 세대 전에 사람들이 선호했던 이름들이 이제는 구식으로 내몰리고 새로운 이름들을 다투어 쓰려는 현상이 지금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다다. 따라서 최근 이곳 신문인 [시애틀 타임즈] 특집기사를 보면 2020년에 가면 졸업식에서 Ethan 이나 Emily 라는 이름을 호명하면 많은 학생들이 일어 설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Ehtan은 그동안 8년동안 이름의 권좌에 앉아 있던 Jacob을 밀어냈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특집 기사는 Alexander 가 Andrew를 밀어내고 선호 5 위 이내로 끼어 들었다고 적고 있다. 또한 여자아이들의 이름 중에서 Emily가 7년 째 제 1위를 고수하고 있고 그 뒤를 이어 Madison, Hannah, Emma, Olivia가 5위까지 차지하고 있다고 전한다.

미국인들이 이름을 선택하는 데는 몇가지 고려 사항이 있다. 무언가 다른 이름이었으면 하면서도 아주 다르지는 않는 이름들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 이유는 어디를 가도 동일한 이름의 체인점 식당을이 넘쳐나는 식의 삶이 너무나 단순해지거나 동일해지기 때문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단조롭고 일률적인 환경에 대한 인간들의 저항인 셈이다.

또한 점점 더 개방화되고 자유스러운 사회 분위기가 확산됨에 따라 엄격했던 사회 분위기에서 성을 주로 불렀던 사람들이 이제는 성을 점차 부르지 않게 되면서 붙여진 이름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는 점도 들고 있다. 게다가 인터넷의 확산으로 사람들이 흔한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되고, 따라서 덜 흔한 이름들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미국에서도 가족들의 연대감이나 가족들의 압력이 약해지면서 아이들의 이름이 친척이나 조상과 연관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또 하나 최근의 경향으로 특정한 집단내에서만 통용되던 이름이 있었지만 이제는 인종적 이름 교환이 무리 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새로운 이름들이 유행한다. 따라서 옛날 같으면 특정 이름을 통해 인종을 구별할 수 있었지만 최근엔 다른 인종들이 사용하던 이름을 또 다른 인종들이 사용하고 있다.

예컨대 2차 세계 대전 이전만 하더라도 Michael은 아일랜드계 이름이어서 카톨릭교도가 아닌 사람은 사용하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거의 모든 인종에서 선호하는 이름이며 오랫동안 1위를 고수하였으며 10 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는 이름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Isabella, Sophia, Benicio, Joaquin, Leonardo 같은 이름들을 스페인계나 이탈리아계가 아니더라도 사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난 100년 동안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이름도 있다. Elizabeth 와 Katherine/Catherine 이다. 그러면서 줄인 이름은 달리 한다. 예전에는 Kit로, 그 후에는 Kathy 로, 그리고 최근에는 Katie 로 불리운다.

마지막으로 최근 대중 문화의 급속한 발전과 확산으로 영화 속 이름 따라 하기나, 기이하고 신기한 이름들을 들고 나오는 연예인 및 회사들이 늘어나는 것도 일반인들의 의식변화에 일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매트릭스>에 나오는 Trinity가 1999년부터 2000년까지 아이 이름으로 선호되었고 "Splash"에 나오는 Madison 도 여자 아이 이름으로 인기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예전에는 이상한 이름은 가진 아이들은 동료들에게 놀림 받거나 실제로 맞았던 것 같다. 기사는 "예전에는 신기했던 이름이 더 이상 놀림거리가 아니다. 이름 때문에 맞는 아이들은 이제 거의 없다"고 적고 있다. 심지어 Rebel 이나 Rocket , Racer 같은 이름도 이제는 멋진 이름 축에 낀다고 말한다.

이름도 유행일 것이다. 예전에 숙자니 미자, 양자 같은 여성들의 이름은 이제는 아이들의 이름으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효리니 유리니 세리니 하는 영어 비슷하게 들리는 이름들이 유행이다. 아름이니 다름이니 아롱이니 다롱이니 하는 이름도 유행이다. 한 때는 다혜가 유행이어서 난리였던 적도 있다. 남자 아이들의 경우도 영석이니 수동이니 한수 같은 이름이 흔했지만 이제는 수빈이니 원빈이니 다빈이니 왠 빈자 학렬들이 눈에 띤다. 물론 옛날에도 조금 고급스런 인상을 주는 이름가진 사람은 얼마나 우쭐댔는지 기억에도 선하다.

우리 나람 사람들의 이름도 이제는 많이 변해서, 서양식 이름도 눈에 띠고 한글로 적긴 하는데 발음은 영어 같은 이름도 눈에 띠기 시작한 것이다. 옛날 같으면 이름 이상하다고 어른이 되기 까지 그 많은 모욕과 굴욕을 견뎌내야 했으며, 영낙 없는 놀림감이었으나 이제는 개성시대니 본인들이 맘만 다져 먹으면 별 일은 없다. 나 같은 경우도 너무도 흔한 이름이어서 어렸을 때는 고민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미국 속담에 "이름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You are nothing without a name)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이름이 갖는 의미가 중요하다는 것일게다. 실제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 이름이 없는 것이란 없다. 문화란 바로 이름 붙이기 위에 구축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름붙이기를 통해 그 존재를 인정하고 상대한다.

문제는 이름이 바뀌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풍토가 우선해야 할 일이다. 엄마 성을 따르고 이름의 길이가 길어지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지만 가족간의 사랑이나 어른들에 대한 공경, 부부간의 평등이 폄하되는 세상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할 것이다. 우리가 사물에 이름을 지어 주었을 때 이미 그 존재는 우리에게 의미있는 것으로 다가온 것일 게다. 이름은 붙여 놓고 의미는 나 몰라라 하는 짓처럼 무렴한 짓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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