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영미드라마 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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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아버지로 살아가기
김정호  2003-03-15 07:36:20, 조회 : 1,758

20년 전에 내가 살았던 오클라호마 노먼(Norman)시는 정말이지 조용하고 한적했던 시골이었다. 6만이 넘지 않는 대학촌이었던 그곳은 주민의 절반 이상이 대학에 관계된 사람들이었으며, 학생들이 주요 고객이었던 곳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갖은 행사를 대학에서 했으며, 대학에 놀러오고 대학을 중심으로 생활을 했으며, 주말엔 콘서트에 참석하고 연극을 보러 캠퍼스를 방문하곤 했다. 특히 미식축구가 열리는 가을부터는 온 시내가 축구 열기로 일주일을 설레면서 보내는 그런 곳이었다. UT와 정기전을 벌이는 날이 되면 남쪽으로 내려가는 I-35가 트래픽에 걸리고 댈러스에 다녀 온 학생들은 얼마나 신났는지를 며칠씩 이야기하던 곳, 달리 할 일도 오락거리도 소일거리도 없었던 그 곳에선 축구가, 그리고 OU가 농구를 잘 할 때는 농구가 주민들의 가장 중요한 화제거리였다.

그곳은 정말이지 달리 할 일이 없어 학생들이 공부할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하늘이 바로 땅과 만나던 그곳은 어디를 둘러봐도 끝없이 이어진 평원이었고, 그래서 우리들은 어디 여행가고 구경갈 곳 없어 그저 도서관에 있어야 했다. 그나마 사철 푸른 잔디와 아름드리 나무들로 둘러 싸인 100 년이 넘은 학교 교정이 제일 아름답고 풍광이 좋은 곳이었다. 산을 구경할래도 하루 꼬박 달려야 했으니 긴 방학이 아니고서는 가까운 곳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망설여지는 그런 곳이었다. 파크에 모여 불고기 구워먹거나 테니스 코트에서 밤 늦게까지 불 켜놓고 공 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면서 금요일까지 공부하고 금요일 저녁에 몇몇 유학생 부부들이 모여 맥주 한 잔 하면서 일주일의 무료함을 달래던 그곳에서 우리 유학생들은 한국에 돌아갈 날만 기다리며 지내야 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교환교수 신분으로 다시 들른 미국의 시애틀은 이제는 아버지 노릇을 별 수 없이 하도록 강요하는 그런 도시였다. 교환교수로 와서 매일 같이 시내를 나돌아 다닐 일도 없거니와 워싱턴 호숫가에 위치한 대학가 주변에서 웬만한 일은 다 처리할 수 있으니 굳이 다운타운까지 나갈 필요도 그리 많지 않은 도시였다. 미국의 다른 곳도 다 그렇겠지만 워낙 도시 면적이 커서 다운타운은 다운타운으로 존재하고, 주택가는 그곳에서 훨씬 멀리 떨어진 한적한 호숫가에 있기 때문에 학교 다녀오면 그저 집에서 음식 만들어 먹고 소일하는 것이 일과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미국 생활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이 일과 끝나면 어김 없이 집에 돌아와 가족과 함께 지내야 하며, 아이들 숙제 봐 주고 어쩌다 포도주 한 잔 하며 향수를 달래고 영화보고 운동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의 일상을 차지한다. 이는 모두에게 크게 다르지 않은 일과여서, 따로 남자들끼리 밖에서 만나 술잔을 기울일 일도 없는 것이 어차피 다른 한국 남자들도 자기들 가정 중심으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처럼 지도해야 할 대학원생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학교의 행정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불만을 토로할 동료들이 있는 것도 아니니 열내고 술 마셔줄 일은 아예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누가 내 이야기에 경청하고 맞장구치는 일도 없으니 밖에서 술 마시고 사교하는 것은 아예 발생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달리 할 일이 없어 아버지 노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에서 아버지로 살아가기란 한국에서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단순하고 기계적인 일상이 되고 있어 수월하기 짝이 없다. 나 같은 경우야 아내가 한국에 있으니 주부의 일까지 도맡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번거롭거나 수선스럽지도 않다. 아침에 일어나 아이 밥 먹여 학교 보내고 나면 할 일 없어 학교에 가야 한다. 오후에 강의가 있지만 오전에 집에 있다보면 게을러지고 이런 저런 잡념이 생기니 서둘러 버스타고 학교가서 도서관에서 자료 뒤적이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학교 유니온 빌딩에서 75전에 리필할 수 있는 커피 맛을 보기 위해서라도 아침에 집을 나선다. 그곳에서 일하는 학생들은 어찌 그리 친절한지...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 올 시간에 맞추어 집에 와 뜨건 라면이건 찬 춘면이건 준비해 간식 챙겨주고 짬을 내어 아파트 관리싶 옆 스파에 들러 따순 목욕하고 포도주 한 잔 하다보면 저녁 먹을 시간이 된다. 식사 후 숙제 같이 하고 시간 남으면 TV 보고 밀린 빨래 있으면 세탁기로 돌려 건조기로 말려 내 개어 놓으면 끝이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출출하면 맥주에 브랜디 넣어 폭탄주 한 잔하고 잔다. 늙으면 선잠 잔다고 하니 폭탄이라도 맞고 자야 푹 잘 수 있어 좋다. 아마 내일도 그럴 것이다.

골프치러 가는 것도 매일 할 수 없으니 일주일에 이틀 정도 필드에 나가면 그만이다. 그것도 이곳에선 골프 친 후에 목욕하는 것도 아니고 어울려 술 마시는 것도 아니어서 골프만 치고 인사하고 각자 자기 차 타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 정상적이어서 골프 친 후 술자리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 편이다. 어쩌다 귀국하는 교환교수 송별연 자리는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아이가 축구 시합 가면 라이드 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따라가는 것이 당연하고, 학교에서 학부형 회의가 있으면 엄마가 없으니 나라도 참석하지 않을 수 없다. 카운슬러도 만나고 학교 돌아가는 것도 알게 되고, 더욱이 아이에게 필요한 정보들도 건질 수 있으니 참석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특히 이곳 워싱턴주는 해산물이 풍부하고 값이 싸기 때문에 앨러스카 킹 크랩을 비롯한 랍스터, 스캘럽 등을 비교적 부담 없이 사 먹을 수 있어 이를 요리하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요즘엔 넙치(Halibut)가 한창이어서 연어와 더불어 초밥을 만들어 먹기에 제철인지라 나는 자주 아이에게 초밥을 만들어 주고 있다. 약간 되게 만든 밥에 식초와 참기름 약간, 그리고 꿀물을 약하게 타서 뒤섞은 다음 한 손으로 조몰락거리다가 포떤 생선조각을 입히면 끝인 초밥만들기는 어찌 보면 매운탕보다 더 간단히 만들 수 있고 입맛을 돌게하니 게으른 나에게는 제격인 셈이다. 초밥 만들고 남는 생건 조각들은 어김 없이 술 안주로 바뀌니 이 때 술도 한잔 더 걸칠 수 있으니 금상첨화라 할까.

지난 주에는 이곳 워싱턴주와 캐나다의 밴쿠버를 중심으로 중고등학교 학교 밴드부 경연대회가 캐나다 밴쿠버에서 있었다. 일주일에 걸쳐 모두 90여개 학교가 참가했는데 작은 아이가 학교 콘서트 밴드부에 가입해 있어 나도 따라 갔다. 같이 가고 싶은 부모들은 갈 수 있다고 해서 신청했는데 왠일인지 남자는 배 나온 미국 남자하고 나 밖에 없었다. 학교 버스엔 밴드부 대원들하고 자원봉사 엄마 둘만 타고, 나는 그 미국인이 운전하는 트럭을 타고 버스 뒤를 따라 캐나다에 다녀 왔다. 트럭 앞자리에 앉아 적당히 말 건네주고 대답해 주면서 졸다 깨다 구경하다 연주회장에 도착했으며, 아이들 무거운 악기 날라주고 북 지켜 주고, 옷 갈아입는 화장실 앞에서 보초서고 연주하는 모습 사진 찍어주고 하루를 그렇게 보내고 왔다. 돌아 오는 길에 아이들은 쇼핑몰에서 자유시간을 가졌으며, 영어 'H'자를 이중으로 겹쳐 놓은 듯한 그 쇼핑몰 내부는 너무 복잡해 나로서는 길 잃어버릴 것 같아 대충 눈으로만 보고 입구에 위치한 커피숍에 앉아 커피마시며 사람 구경하다 졸다 깨다 그랬다. 이달 말에 헬레나 화산 탐사 여행 때도 나는 그럴 것이다.

미국에서 아버지로 살아가기는 그저 일상이다. 밖에서 불러주는 이 없으니 이런 일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 다 그렇게 지내고 있으니 나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무슨 홈리스도 아니고 나 혼자 싸돌아 다닐 수도 없으니 해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 한 달에 한번 드라마스쿨 정기 연극 공연 관극하러 대학로에 야간에 머무를 때를 제외하고는 아이를 픽업하기 위해서라도 해 동동할 때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삶. 한국이 아버지를 불러내는 사회라면 미국은 돌려보내는 사회인 셈이고, 한국이 술 권하는 사회라면 미국은 가족에게 봉사를 권하는 사회인 셈이다. 내 넋두리 들어줄 제자들 없으니 나는 아이와 이야기할 수 밖에 없고, 내 불만 같이 나눌 동료들 없으니 나는 아이와 지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잔 잡아 권하고 같이 술 마셔줄 사람 없으니 아이에게 술 한잔 따르게 하면서 집에서 마실 수 밖에 없는 생활, 바로 미국에서 아버지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한국에서 아버지 노릇하기가 숙제 열심히 하고 출석 잘하고 발표 잘해야 겨우 학점 딸 수 있는 쫀쫀한 과목이라면 이곳에서 아버지 노릇하기란 그저 출석만 잘하면 학점 잘 나오는 널널한 과목이라고나 할까? 세상에 이렇게 학점 따기 쉬운 과목을 누가 수강신청하지 않으며 누가 드랍할 것인가?

어차피 이러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는 못해 볼 생활일 것이다. 나는 다시 밖으로 돌 것이고, 동료들과 어울릴 것이며, 학생들과 방과 후에도 만날 것이다. 한국에서 살아가려면 밖에서 노는 법을 알아야 할 테니까... 그나 저나 이렇게 노는 법을 모르고 지내면 한국에서 잘 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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