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영미드라마 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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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설고 물 설고 낯도 설고
김정호  2003-04-19 01:44:22, 조회 : 2,686

이곳에 온 지 여덟 달이 넘어서고 있고, 또 20년전에 이곳에서 생활한 것 까지 포함하면 적지 않은 기간을 살았다고 할 수 있지만 여전히 적응하기가 만만하지 않다. 우리와 다른 풍습과 버릇, 그리고 사회 조건들이 가끔씩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황당하게 몰아가기도 한다. 집 나오면 고생이라는 우리 옛말 하나도 그른 적이 없지 않은가.

예컨대 좌측 통행이 습관화되어 있는 나로서는 이곳 사람들의 보행과 자주 어긋나 불편함을 느낄 때가 많다. 특히 캠퍼스에서 강의 시간에 대느라 서둘러 잔디밭을 가로지를 때 나는 반대로 걸어 오는, 그러니까 내가 가는 쪽으로 걸어오는 학생들과 자주 엉키며 그들을 피해 걸어가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시간은 다 되어 가고 복사할 책 몇 권 집어 넣은 배낭은 무겁고, 리필한 커피 흘릴까 봐 신경쓰며 걷는 중에 엉키는 행렬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경우는 이곳 어디에서나 빈번히 발생하여 좁은 계단을 엇 갈려 지나치는 경우는 여지 없이 한번 쯤 발을 멈추어야 한다.

그런가 하면 나로서는 다행인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것은 이곳 미국인들의 계산이 정말이지 어이 없을 정도로 서툴러 이익을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계산기를 사용하니까 도대체 왜 이렇게 계산이 서투를까 싶지만 계산기 키보드를 두드르기 전에 어느 정도 정리해야 할 경우 그들이 하는 짓이란 상상을 초월한다. 여러 가지 경우가 있었지만 가장 인상적인 경우는 학교 앞 복사집 점원의 서툰 계산 때문에 이익을 본 경우다.

이곳 미국의 일반 생활 물가는 이들이 연평균 소득이 우리보다 높은 것 만큼이나 우리의 그것보다 거의 대부분 두배 혹은 세배이상 비싼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동차 보험료는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고 중고차 가격은 6년 된 지금의 내 차가 $5,000 이 넘어서니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아마 닭 다리나 허벅지 살, 개스(개솔린)값 정도나 한국에 비해 싸다고 할 수 있을까?

나 같은 경우 직업이 그런지라 복사를 자주하는 편인데 이 복사비가 녹록치 않다. 복사비의 경우 학교 내 도서관의 경우 복사기를 이용해 복사하면 장 당8전에서 10전 까지(우리 돈으로 100원에서 120원) 하기 때문에 나는 주로 학교 앞 복사집을 이용한다. 그곳에서는 장당 6전(우리 돈으로 70원)에 복사를 할 수 있는데 물론 주인이 복사해 주는 경우는 이보다 배가 비싸다.

첫 학기 동안 나는 한국인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복사집을 이용하다가 여러가지 사정으로 멕시코인이 운영하는 복사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러던 중 거의 매주 적게는 한번 이상 들러야 하는 그 복사집 주인과 어느날 딜을 하여 장당 4전에 했었고, 그 다음 학기에는 다시 딜을 하여 3.5전에 합의를 했다. 이곳에서도 고객인 경우 혜택을 주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그리고 신기한 것은 3.5전 때문에 점원이 자주 계산을 틀려 결국 3전으로 했다는 사실이다. 외견 상 말끔하고 명민하게 생긴 그 점원은 왠일인지 계산기를 이용해도 "3 .5전 * 378 장" 같은 경우 종종 계산을 엉터리 없이 틀리게 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물론 주인은 실수 없이 계산하곤 했지만, 어쩌다 주인이 없을 때 그는 복잡한 계산 때문에 3전으로 해 주었다. 한 두번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주인과 다시 딜을 하여, 물론 점원이 왠일인지 계산을 잘 못하니, 복잡하니 어쩌니 하는 식은 아니고, 특별 고객 취급을 요청했다.

"너, 나 누군지 알지?"
"응, 김 교수라고 했잖아?"
"아니, 그것 말고. 너, 내가 여기 얼마나 자주 오는지 알지?"
"응, 일주일에 한 번?"
"아니, 그 보다 더 자주. 두 번, 때로는 세 번."
"그런 것 같다."
"그런 내가 특별 고객이게, 아니게?"
"특별."
"특별 딜 해줄래, 안 해줄래?"
"해줄게."

이후 나는 줄곧 3전에 복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내가 적응하기 힘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엄청나게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할 때가 자주 있다는 사실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병원(의원)비다. 20년 전 유학생 시절에 난 학교 보험을 들어 학교에서 운영하는 보건소를 자주 이용했었다. 그곳에 가면 의사의 진찰비는 무료였으며, 단지 처방전을 발급받는 경우 약값만 약국에서 지불하면 되었고, 어떤 때는--예컨대 간단한 처치를 받은 경우--처방전을 발급 받았어도 약국에 들르지 않고 슬쩍 처방전을 쓰레기 통에 던져 버리고 그냥 돌아옴으로써 돈을 절약한 적도 있다. 한 가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이 있었다면 학교 보건소 의사들이 하나 같이 은퇴한 노인들이어서 가는 귀가 먹었다는 사실이었다. 가장 흔한 경우는 한국에서 상비약 등을 공수해 자가 처방을 통해 병과 싸우는 것이었다. 그때는 많은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약을 공수해 자기 처방을 통해 항생제도 먹고 물약도 먹으면서 돈을 절약했었다.

이곳에 와서 작은 아들 감기로 병원에 간 적이 있다. 환절기라서 그랬는지 작은 아들 녀석이 어느 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와서 처음 감기에 걸렸던 것이다. 물론 사스가 유행하기 전인 지난 달 중순 경이어서 나로서는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고 우리 말에 "감기는 약 먹어 일주일, 안 먹어 칠 일"이라는 속설이 있기 때문에 하루 이틀 더 견뎌보라고 했지만 사나흘이 지나도 차도가 보이지 않아 결국 의원에 가게 되었다.

의사가 진료할 수 있는 시간과 아이가 방과 후 가능한 시간을 맞추어 예약을 병원에 들러 참으로 간단한 면담만 하고 아, 나는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이곳 개인 병원을 설명하자면 참으로 가소롭기 짝이 없을 정도로 허술하다. 간호사 복도 입지 않은 아줌마 도우미가 접수를 받는 병원 대기실엔 나와 우리 아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어 절간 같았으며, 아마도 환자 한 명당 30분 간격으로 예약을 받기 때문에 대기실에서 기다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진료실이라고 해 놓은 방에는 겨우 미렁지 같은 종이 깔아 놓은 침대 하나와 귀 속 들여다 보는 작은 손전등 하나, 그리고 입 속 열어 보는 대나무 막대 하나가 전부였다. 구석에는 체중기와 신장기 하나 놓여 있고. 한국에서 최근에 개업한 개인 의원들의 그 안락하고 화사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그리고 갖은 잡지들과 음악과, 케이블 방송과 꽃꽃이 수반 및 세련되고 아름다운 간호사 언니 등을 기대했다가는 넋 나가기 십상이다.

의사 역시 한국에서처럼 잘 생기고 젊은 명민한 의사가 아니라 나보다 더 나이들어 보이는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의사였으며, 그는 주로 내 의견을 참고해 판단하는 것 같았다. 이책 저책 뒤적이며 '그 책 어디 두었더라' 두리번 거리기도 하고, 이윽고 책 속에서 발견한 약 이름 조심스럽게 처방전에 적어주는 그 모습이 도저히 미덥지도 않고 마뜩치 않았지만 어쩔 것인가. 이곳이 바로 미국이라는데. 그리고 진료를 마치고 돈을 지불할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해야 했다.

"보험 드셨군요. 디덕터블이 77불이군요. 전부 해서 77불 입니다."
"예? 그렇다면 보험 없이는 얼마?"
"그 경우에는 220 불입니다."

아, 한국에서 30만원과 10만원 사이에서 고민 끝에 디덕터블을 10만원짜리로 들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이던가. 더 이상 물어보기도 민망하고 어이 없었지만 지불하고 처방전을 받아 한 숨을 돌리며 약국에 들렀을 때 나는 더 놀랐다. 알약 6개 65불, 물약 약간 30불, 총 95불을 지불해야 했던 것이다. 그것도 30분이나 기다린 후에. 감기 한번 보러 갔다가, 의사 10분 만나고 나는 거금 20만원을 지불했던 것이다. 한국이라면 돈 만원이면 주사 맞고 꿰 메고, 6개월도 넘게 사용할 정도의 연고 여러개까지 얻을 수 있지 않았던가.

이곳 미국의 보험은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비싸고, 병원 이용료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나 같은 경우 한국에서 보험을 들었기 때문에 그나마 싼 경우지만, 이곳에서 비지니스 보험이 아닌 개인 보험은 너무나 비싸다. 그것도 개인 부담금이라고 할 수 있는 디덕터블이 반드시 있으며, 그 개인 부담금도 우리의 경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 보통 개인부담금 500불인 경우를 가장 선호하는데 이 경우 한달 가족 보험료가 540불 정도가 된다. 그러니까 한 가구당 한달 보험료가 70만원 정도고 혹시 아파 병원에 가면 개인 부담금으로 60만원까지는 자기가 지불해야 한다. 감기의 경우 220불 정도니 다른 경우는 500불이 대체로 넘어선다고 볼 수 있다. 개인 부담금을 올리면, 그러니까 2000불, 혹은 10,000불 이런 식으로 자기가 부담하는 조건으로 보험을 드면 한달 보험료가 낮아지는데 그렇다고 무턱대고 낮아지는 것은 아니고 최소 300불 정도는 반드시 내야 한다. 그래도 젊은 사람들은 개인 부담금을 높이고 월 보험료는 낮추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한국의 의료보험은 비록 정권은 사정 없이 흔들었으나 우리 같은 일반 서민에게는 더할 수 없이 싸고 만만하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동네 의원인 경우 그 공동체 속성상 수퍼마켓 주인 소유의 의로뵤험카드 한 장을 온 동네 사람들이 돌려가며 사용해도 거부할 수 없으니 주민 좋고 의사 좋지 않은가. 동네에 병원 낸 의사가 거부하면 동네 사람들 그 원망을 어찌 들을 것이며, 다른 의원에 가서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는데 어찌 거부할 것인가. 그래서 군대 간 청년 앞으로도, 돌아가신 할머니 앞으로도 의료보험비가 청구되지 않은가. 물론 봉급 생활자들이야 그 몫까지 대신 지불해야 하지만 말이다. 아, 우리나라 좋은 나라. 너 좋고 나 좋고.

그리고 한 가지 더, 이곳 미국에서 의사들의 경우 하루에 진료하는 환자 수가 아주 적어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수입은 높았다. 10명만 보아도 하루 수입은 몇 천불일 정도니까. 사무실 임대로, 간호사 인건비, 기타 제반 잡비 등을 제한다 하더라도 한달이면 얼마? 그래서 이들은 예약 받고 띄엄 띄엄 환자 보고 일찍 문 닫고 정말 게으르게 근무하며 하루를 보내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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