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영미드라마 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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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 주부(?)의 상념들
김정호  2002-10-31 01:14:53, 조회 : 2,698

시애틀의 시월은 가을의 한 복판이다. 한 낮엔 따뜻하지만 새벽엔 히터를 틀어야 될만큼 쌀쌀하다. 그러나 아직은 짧은 소매 옷을 입고 다닐 수 있으며, 본격적인 우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특히 이곳 신문들은 올해 유난히 비가 적어 버섯 채취꾼의 한숨을 전하기도 하고, 심지어 "요즘은 아침 이슬 모아 발전한다"는 전력회사 직원의 말을 인용할 정도로 가뭄이 장난 아니다. 그러나 일년 살다 갈 교환교수에게는 오히려 고맙기만 하다. 해 있을 때 이리 저리 바쁘게 싸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겨울 이곳에 먼저 와 있었던 사람들은 온통 잿빛 천지고 비가 끝 없이 왔던 그 겨울의 지겨움을 적절한 말이 없어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직접 닥쳐보세요"라고만 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해가 짧아지지만 여름일광절약시간대(summer time)라 그래도 여섯시가 넘어 어두워진다.

요즘은 골프장에 일주일에 한번씩 나가려고 노력한다. 청강하는 강의가 마침 수요일엔 없기 때문에 그날을 이용한다. 아이 학교 보내고 설겆이 하는둥 마는 둥 서둘러 오전 일찍 가면 오후 2시쯤 돌아올 수 있다. 다시 점심 대충 먹고 이것 저것 뒤져보고 중고 매장 들러 필요한 물건 사고 다시 돌아오면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된다. 방과 후 활동으로 테니스부에 가입해 운동을 하고 돌아오기 때문에 배고파하는 아이에게 간식 챙겨주고 다시 축구 도구들 챙겨 공원까지 아이 라이드 해주고 픽업해오면 저녁 식사 시간이다. 숙제 봐주고 혹은 같이 텔레비젼 영화보고 그러면 하루가 간다.

아이 잠든 후 와인 한 잔 홀짝이며 이곳이 한국이라면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도 생각해본다. 삼겹살에 소주 생각도 나고, 테니스치고 난 후 시원한 맥주 한 잔도 생각나지만 내일 아침 또 일찍 일어나 아침상을 차려야 하기 때문에 그냥 잠자리에 든다. '내일은 또 무슨 반찬을 하고 국은 또 무엇으로 끓여 낼까, 미역국? 아님 김치 잘게 썰고 소시지 조금 넣은 부대지깨?, 그것도 아니면 된장 풀고 김치 넣어 잡탕인 김치된장국? 마늘은 다음에는 깐 마늘을 사야지, 그래 세이프웨이보다 앨버슨이 더 싼 것 같았어, 생채 무른 것은 물로 헹궈내서 꼭 짠 다음 참기름과 깨소금 넣어 버무려 먹어야지, 미국 소시지는 좀 더 짜니까 물에 삶아 소금기 빼고 드레싱 얹어 먹어야지, 양상치도 잘 벗겨 쌈 싸먹으니 괜찮던 걸? 그라운드 비프는 7 % fat 으로 사고 두부 넣고 무 썰어 시원하게 끓여 내야지, 정 교수 사모님이 주신 김치가 더 시어지면 기름에 볶아 내어 두부 김치 해 먹을까?' 등등 자질구레하기 한도 끝도 없는 생각을 하면서...

전형적인 주부 생활이다. 남편 몰래 아이 학교 간 틈에 얼른 하고 싶은 일 나가서 하고 오는 그런 주부 말이다. 아내와 아이들 미국보내고 한국에서 돈 벌어대는 기러기 아빠들은 아마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회사 친구들과 어울려 저녁먹고 술 마시고 그럴테니까.

삭사 준비는 어차피 먹고 살아야 하니 극히 기본적인 행사고 설겆이와 빨래, 청소도 모두 내가 해야 한다. 주니어 하이에 다니는 아들 놈을 가끔 설겆이도 시키고 빨래하고 건조기에 말린 옷 개어 놓는 일을 시키기는 하지만 그래도 많은 부분은 내 몫이다. 해도 해도 표나지 않고 반복적인 것이 바로 집안일이다. 나는 비로소 쉰 살이 되어 이곳에 아들 놈과 함께 살면서 여성들의 하루가 얼마나 단조롭고 우대받지 못한 채 힘드는 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닭고기 허벅지 살 속에 지방이 그렇게 많은 줄 여기 와서 알았다. 그 살 속을 헤짚어 지방을 떼내고 칼로 다져서 불고기를 재워 놓으면 며칠은 견딜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도 느낀다. 아이가 먹고 싶을 때 해주다 보면 이러다가 한국에 가서도 이 짓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쓸 데 없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실제로 정말이지 요즘은 주부 습진 생길까 조금은 걱정하고 있다.

그래도 아들 놈과 함께 있으니 그나마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놈마저 없으면 먹는 것, 사는 것 하며 모든 것이 대충일테니까. 적당히 긴장도 되고 아이 적응해 나가는 것 보는 것도 또 다른 긴장과 즐거움이다. 아이가 없다면 하루에 몇마디 않고 지나갈 날이 대부분일 것이다.

20년만에 미국에 다시 오면서 결심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미국을 즐겨라는 것이다.

유학 시절 모든 것을 빨리 끝내고 돌아가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제대로 미국을 경험하지 못했었다. 학교, 도서관, 식당, 세차장, 그리고 다시 학교... 그때는 유학 생활을 미래를 위한 준비기간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니까 이곳 생활을 다음에 무엇이 되기 위한, 무엇을 하기 위한 생활이어서 참아내고 단련하며 견디어내는, 그리고 또 얼른 끝내야하만 하는 그런 생활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골프는 물론 엄두를 내지 못했으며, 심지어 테니스를 치는 학생들도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듯해서 못마땅하거나 딱하게 여겼던 적이 있었다. 그저 금요일 저녁 가까운 유학생들 부부와 어울려 음식 만들어 곁들이며 술마시고 떠들며 한 주의 피로함과 고단함을 잊어내는 그런 생활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서둘러 마치려고 잠시도 한눈 팔지 않고 달려갔을 때 그 끝에서 느끼는 허전함은 무서웠다. 그리고 그 결과도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뒤 한국에서 보냈던 그 5 년의 세월들...아, 나는 그 때 참으로 고단했고 어려웠었지. 또 아내한테는 얼마나 미안했던가.

지금은 일부러 이곳에 와 살려는 사람들도 있으며, 또 미국을 경험하기 위해 돈과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안다. 어린 아이도 혼자 보내는 용기있는 부모들도 있으며, 부부 교사들 중에는--정말이지 한국에서 가장 한가하고 여유로운 사람들이 바로 이들일 테니까-- 때를 거르지 않고 방학마다 애들 떼어 놓고 둘만이 여행다니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그럴 것이다. 삶의 어느 부분이라도 다음 부분을 위한 희생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모든 때와 시간은 그 자체로 소중한 순간으로 그리고 삶의 한 부분으로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다음은 항상 다음일 것이고, 우리가 존재하는 시점은 바로 지금이니까.

다시 찾은 미국에서 나는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전업주부면 어떠랴? 물론 내 아이에게도 맛있는 것도 먹고, 운동도 하고, 마음껏 즐기며 보내는 유학생활이야말로 훗날 그에게 말할 수 없이 큰 힘이 될 것이고, 좋은 재산이 되었으면 한다. 적어도 우리 아이에게 지금의 미국생활이 내가 느꼈던 그런 생활은 아니었으면 싶다. 그가 훗날 다시 미국에 왔을 때 지금의 이 생활을 즐겁게 회상할 수 있는 그런 생활을 하길 나는 바란다.

토요일에는 아이가 축구시합을 하러 이곳 축구장에 간다. 멀리는 한시간쯤 차를 타고 가기도 한다. 이곳 아이들은 금요일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토요일에는 이렇듯 운동을 하며 건강을 다지고 있었다. 한국 학생들과 비교하여 그들은 공부 외에도 음악과 체육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뛰고 달리고 있었다.

아, 전업주부의 상념은 끝도 없이 떠 돈다. 게다가 지난 시절까지 왜 그리 생생한지...시애틀의 가을은 비도 온단다. 여느 해라면 6 개월은 간다는데... 아직은 새벽에 왔다가 그쳐 낮 시간에 활동하는데는 지장 없지만 점차 비오는 시간이 많아진단다. 비가 오면 주부의 하루는 어떻게 바뀔까. 히터 더 틀고 따순 물 데어? 저녁엔 스파에 가서 뜨건 물에 몸 담그고 피로 좀 풀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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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업 주부(?)의 상념들  김정호  2002-10-31
01:14:53
     Re..전업 주부(?)의 상념들  이희원  2002-11-08
09:19:09
       Re..전업 주부(?)의 상념들  김정호  2002-11-09
09:5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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